필리핀은 우리에게 가까운 이웃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러시아, 바다 건너 일본 그 다음에 필리핀이 나타난다.

필리핀은 한국전쟁 당시 전투병력을 파병하고 경제 발전 초기인 가난한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준 나라이기도 하다. 필리핀은 또한 쌀농사 문화권이어서 사고방식이나 문화 측면에서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렇게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이웃인 필리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한국과 필리핀 간 경제협력 방안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그동안 얼마나 했는지, 부족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올해로 한국과 필리핀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60년이 됐기 때문이다.

60년이면 동양철학에서 변화의 기본 시간단위다. 필리핀을 한마디로 요약 표현하라고 요구받으면 나는 주저없이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로서 상생공영의 미래동반자가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잠재력이 정치ㆍ사회 구조의 불합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시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니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필리핀은 상하(常夏)의 나라로 2~3모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관개시설, 농약, 비료 부족으로 오히려 주곡인 쌀을 수입한다. 기업형 농업 가능성이 크게 열려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한 제조업도 가능성이 충분하다. 자연경관을 이용한 관광산업 잠재력이 무한함은 말할 나위도 없는 상식의 영역이고 수력 풍력 조력 등 자연조건을 이용한 전력생산 잠재력도 매우 크다.

그동안 많은 한국 기업들과 개인들이 필리핀 진출을 시도했다. 성공사례도 있고 실패사례도 있다. 실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투자한 내용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필리핀과 우리나라 간 상호 보완성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부족하여 투자기회 포착이 주먹구구인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둘째, 필리핀이 외국인투자와 토지 소유에 대한 복잡한 규제 체계가 있는 만큼 기업과 정부기관 간 공조체계가 유기적으로 운용되어야 하는데도 기업별로 각개약진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제서야 정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수습이 어려워지거나 현지 거간꾼에게 피해를 보는 사례가 종종 있다. 셋째, 우리 경제개발 경험을 활용하여 한국과 필리핀 간에 산업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시도가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우리 개발경험을 필리핀에 이전함으로써 필리핀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우리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는 ‘윈윈’ 전략에 대한 밀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강력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필리핀 치안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인 피해사례는 한국인 간 분쟁, 한국인 범죄조직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유흥업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필리핀 치안상태가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MILF 반군, NPA 반군도 활동영역이 제한되어 있고 평화협상도 진행 중이어서 투자지역 선정에 신중을 기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리핀은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러나 위험보다는 기회가 훨씬 크고, 관리 가능한 위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기회 포착에서 오는 보상 또한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 따지고 보면 성장 잠재력이 있는 개발도상국가 중 필리핀보다 치안상태가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정보 공유 등 위험관리를 위한 민ㆍ관 협력체제 구축, 정부 간 협력을 통한 투자환경 조성 노력이 전제된다면 필리핀은 분명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아직 모든 것이 완전히 정돈되어 있지 못한 지금이 오히려 남보다 한 발 앞서갈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다. 필리핀을 연구하자. 그것도 아주 열심히.

[최중경 주필리핀 한국대사ㆍ경제학박사]